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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윤 근황과 미국에서의 성공, 부인 줄리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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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자니윤을 기억하시는지요?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일텐데요.


자니윤은 토크쇼 진행자로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 중에 한명입니다.


왜냐하면 자니윤의 사고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동시에 일방적으로 비판받을 수 없는 것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특성만큼이나 미묘한 것이 자니윤의 인생입니다.


자니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냥 토크쇼 진행자.


혹은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코미디언이라고 기억합니다.


영어를 못하는 아시아인 출신으로 미국 연예계에서 성공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자니윤은 어떻게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자니윤은 1936년 10월 22일 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85세. 본명은 윤종승


자니윤은 해군유학생으로 미국에서 군복무를 하는데요.


한국에서는 MC로 활동했었습니다.


당시 그다지 이름을 알리지 못했는데 미국 군복무를 계기로 코미디언으로서의 화려한 인생이 시작됩니다.


2005년에 타계한 미국 코미디언의 거장 자니 카슨.


NBC의 '더 투나잇쇼'라는 토크쇼를 무려 30년 이상 진행한 사람입니다.


자니윤을 주목했던 자니 카슨은 그를 자신이 진행하던 '투나닛 쇼'에 34회나 출연시킵니다.


당시 자니윤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주로 했는데요.


지금도 미국 토크쇼에 출연하는 게스트들은 시청자들에게 인상을 남기기 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곤 합니다.


자니윤은 여기에 충청도 출신의 특유의 악센트를 살립니다.


느릿느릿한 충청도식 영어가 미국 코미디 컨셉과 부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웃기면서도 세련된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89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건 '자니윤 쇼'를 시작합니다.


당시 보조진행자는 조영남.


그러나 자니윤 쇼는 1년만에 막을 내립니다.


소재면에서 미국과는 다른 한정적인 방송 환경에 자니윤 쇼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영화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었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후보 시절 재미후원장으로 활동합니다.


그 덕인지 몰라도 2014년에는 한국관광공사 감사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2016년 자니윤은 뇌출혈로 쓰러지고 미국으로 돌아가 요양을 하게 되는데요.



자니윤은 1999년 18살 연하의 사업가 줄리아리와 결혼했습니다.


한눈에 반해 이루어진 결혼이었는데요.


2009년 법적으로 이혼하게 됩니다.


이혼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 참 많았는데요.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밝혀진 바로는 줄리아리가 전 결혼에서 얻은 아들이 있었는데요.


이 아들과 자니윤 사이에 불화가 심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법적으론 이혼을 했지만 두 사람은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지낸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혼을 한 후에도 6년이 지난 2015년 채널A의 부부극장 콩깍지에 출연하기도 했죠.


현재도 줄리아리는 요양 중인 자니윤을 자주 찾아가 변함 없이 돌보고 있습니다.


자니윤은 치매와 뇌출혈 등으로 건강히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디 건강을 되찾아 다시 팬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날을 기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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