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먼 옛날의 노래이지만 듣고 전율이 돋은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이난영 선생이 1934년 발표한 '목포의 눈물'입니다.
일제의 탄압을 풀어쓴 슬픈 노래입니다.
이곡에 대한 사연을 말하자면 원래 손목인 선생님은 고복수 선생님에게 줄려고 이 노래를 만드셨습니다.
작곡 당시의 제목은 <갈매기 우는 항구>였습니다.
그때 오케레코드의 이철 사장이 손목인 선생님이 가사를 하나 들고 찾아옵니다.
"손 선생! 이번에 새로 지어진 가사인데 손 선생이 여기다 곡을 지어주시오..."
이철 사장이 들고온 가사는 1934년 오케레코드사가 공동 주최한 제1회 전국 향토문예 공모전에서 1위를 수상한 당선작 이었던 문일석 이라는 당시 신문사 기자가 쓴 <목포의 사랑> 이라는 제목의 노랫말 이었습니다.
그 가사를 받아든 손목인 선생은 가사에 맞는 곡을 짓기 위해 여러날의 고민 끝에 고복수 선생에게 주려고 만든 <갈매기 우는 항구>의 곡조에 <목포의 사랑> 이라는 제목의 가사를 붙여서 불러보았습니다.
잘 맞아 떨어지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곡조에 붙었던 <갈매기 우는 항구>라는 제목의 가사를 버리고 <목포의 사랑>이라는 가사를 곡조에 붙이고 제목을 손목인 선생이 <목포의 눈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곡을 고복수 선생에게 주려고 오케레코드는 제안 했지만 손목인 선생은 목포 출신의 이난영 이라는 당시 신인가수가 불러야 한다며 그녀에게 이곡을 주었고 이곡을 그녀가 취입해서 발표하고 나서 히트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때 조선총독부가 노래 및 음밤 사전검열을 했었는데 이 노래도 사전검열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조선 총독부 눈에 "삼백년 원한품은..." 이라는 가사 구절이 걸립니다.
그래서 오케레코드사 관련인을 불러 이 가사에 대해 물었고 오케레코드 내에서의 회의를 거쳐서 가사를 <삼백연 원안품은...>으로 고쳤습니다.
일본사람에게 삼백연과 삼백년이 다른 것이라고 설득한 것입니다.
하지만 발음이 똑같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기엔 삼백년 원한품은 이라고 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대라서 엔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난영 선생의 구슬픈 목소리와 창법은 일제시대 우리나라 민족의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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