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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선우영빈, 야인시대 하야시의 실존인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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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이창훈이 연기한 하야시라는 인물입니다.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에 보면 일본인으로 나오는데요.


실제로는 선우영빈이라고 하는 한국인입니다.


선우영빈은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1909년 태어났습니다.


5세쯤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습니다.


일본 우익이자 야쿠자의 원조인 도야마 미쓰루에게 발탁되는데요.


도야마 미쓰루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이후 일본 최초의 우익단체인 겐요샤를 설립한 인물입니다.


일본의 대륙진출, 아시아의 독립을 주장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병합을 강조한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이 겐요샤는 흑룡회를 비롯하여 많은 행동조직을 거느리게 됩니다.


선우영빈은 이 도야마 미쓰루의 오른팔이자 겐요샤의 하부조직을 관리했던 고노에의 사위였던 것입니다.


선우영빈은 일본에서도 원래 건설업 분야에 종사했습니다.


하지만 건설업이라는 것이 야쿠자의 도움이 없으면 일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시미즈 구미에 들어갔고 고노에의 눈에 띄어 사위가 되었으며 건설업 분야에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선우영빈은 바로 이 고노에가 조선에 파견한 중간 보스였던 것입니다.


김두한을 다룬 드라마, 영화와는 달리 실제로 김두한과 형, 동생의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조선홍독부에서도 건드리지 못할 만큼 힘이 막강했습니다.


(당시 겐요샤는 정치계와 밀착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끔 김두한과 술한잔 하는 사이였고 매우 젠틀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겐요샤와는 달리 정치적인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자신을 사무라이로 여겼으며 선우 종친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참고로 장충단 공원의 결투라고 하여 김두한과 하야시가 붙었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돌아다니는데요.


이것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입니다.


결투의 장소로 등장하는 밀림다방은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6.25 전쟁 이후에 생겨났습니다.


광복이 되자 선우영빈은 자신의 아내와 부하는 일본으로 보내고 자신은 고향인 평양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월남.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친일 행위로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후 현재 명동성당 앞자리에 건설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53년 ~ 1963년까지 한국건설업회 이사를 지냈습니다.


이후 1968년 서울 지부장를 지내고 1974년 서울 지하철 건설 공로로 철탑산업 훈장까지 받게 됩니다.


선우영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1978년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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